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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여명~
얼마 전 내 고향 하동 화개골에서 제25회 하동 야생 녹차 축제가 열렸는데 23년 만에 참석했다는 사연의 글을 포스팅한 적이 있다.
녹차에 대해서 어지간해서는 필자가 글을 쓰지 않는데 그래도 몇 자 적어볼 내용이 있어 그때의 기억을 되살려 지난 흔적을 기록으로
남겨 본다.
우리나라 처음 녹차 축제는 민선 최초 하동 군수 정구용 군수님 때 만들어져 현재 25회를 맞이한 역사 깊은 축제다.
우리나라 녹차 축제의 시초는 부산에서 차(茶) 활동을 해 오시던 여천 김대철 선생님과 차를 사랑하는 몇 분과 필자가 함께 해오던 우리
멋, 맛, 흥 이란 차(茶) 문화행사가 변천되어 야생 녹차 축제란 새로운 이름으로 탄생 된 것이다.
필자가 23년 만에 녹차 축제 행사장에 나간 이유는 처음 녹차 축제의 시초가 된 우리 멋, 맛, 흥의 차(茶) 문화를 이끌어 오신 여천 김대철
선생님이 이번 녹차 축제 행사 대회장의 신분으로 행사에 참석한다는 전화를 받고 오랜만에 차(茶)라도 한잔하자고 해서 시간에 맞춰 참석했다.
그렇다면 여천 김대철 선생님은 누군가, 우리 차계(茶界)의 마지막이며 영원한 스승 100세의 다옹(茶翁) 금당 최규용옹 선생님의 제자다
금당(錦堂) 한국 차 문화의 큰 발자취를 남기시고 (1903~2002) 타계했으니 꼭 백수를 누린 장수 차인 이며 우리 차계(茶界)의 최고 공로자이며
한·중·일 차(茶) 문화계의 큰 별이었다.
특히 제1회 세계 차(茶) 한·중·일 한국대표단장을 역임하시고 제2회는 여천 김대철 선생님이 단장을 맡게 된 역사적 기록들이다.
이런 선생님과 필자의 만남은 내 고향 지리산 야생 녹차가 약 41년 전에 인연을 만들어 놓았다. 지금이야 많은 차(茶) 인들이 우후죽순 생겨나
대단한 차(茶)인 처럼 자랑질하는 모습을 보면 할 말을 잊는다.
그래도 차(茶)는 뭐니 뭐니해도 예의와 예절이고 법도며 차(茶)의 정신이다. 기본도 안된 자가 큰 어르신 계신 앞에서 동래학춤을 추지를 않나
차(茶)에 차(茶) 자도 모르는 자가 명인이며 차(茶)인 처럼 행동하는 이런 모습이 좋아 보이는지 핸드폰으로 그 모습을 담는다고 날리지기는
모습을 보니 어이가 없다.
필자가 야생 녹차 축제에 23년 동안 안 나간 이유가 여기에 있다 녹차 축제는 일반 축제와는 구별과 차별화 되어야 하고 차(茶)의 정신세계가
표현되어야 한다.
제1회 2회 때만 해도 녹차 축제가 너무 좋았다 내가 차(茶)인 이라면 그때를 그리워하고 기억할 것이다. 이런 이유로 내 집에서 안티 녹차 축제가
열리게 된 동기다.
세월이 지나면서 내 눈과 기억을 지워야 하기에 세속인들과 거리를 두고 살아왔다 그래 차(茶)도 인간으로 시작해서 결국 인간으로 끝나는
걸일까. 내년에는 전 세계 차(茶) 엑스포도 있는데 우리 차(茶)를 알릴 좋은 기회인데.
이날 야생 녹차 축제 행사장에 귀한 작품이 나와 담아 보았다. 특히 경기 이천에서 온 유병유의 흐름이 뛰어난 “천목 도자기” 어디인지는 모르지만,
“진사” 다완 이 내 눈의 시선을 끌어 오랜만에 내 눈을 즐겁게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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